디지털 헤리티지 ‘기억의 전시’
(The Memory Exhibition)
2022 서울시 전시지원 프로그램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35길 63화~일: 09:30 - 17: 30 (월요일 정기휴무)
'본 전시는 옛 도시 한양과 현 서울사이를 지나는 공간 위에 소실된 기억을 복원합니다.'
'The present exhibition restores lost memories onto spaces crossing the old city Hanyang and the current Seoul'
기획의도: 도성 주변의 유산들은 수 세기에 걸친 시공간 속에서 우리의 일상과 함께 공유했다. 즉 (문화재) 공간 위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레이어는 옛 도시 한양과 현 서울 사이에 존재했던 각 시간 층 속에서 재구성된 모습을 통해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고, 조선 시대 한양의 모습과 초현대 화 된 서울 사이사이의 모습 속에서의 이질적 괴리감을 입체적 표현 작업을 통해 좁히고자 한다. 한편, 외세의 방어를 위해 세워진 한양도성의 역사 속에는 포지티브와 네거티브라는 적대의 역사가 공존한다. 그만큼 숱한 세월 동안 다양한 이면의 역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구조적 형태를 띠며 각각의 역사적 공간 위에 지금까지 숨 쉬고 있다. 본 전시는 그 공간 위에 소실되거나 복원된 현장의 현 모습뿐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동시에 이야기하고자 한다.
(The Memory Exhibition)
2022 서울시 전시지원 프로그램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35길 63화~일: 09:30 - 17: 30 (월요일 정기휴무)
63, Changgyeonggung-ro 35-gil, Jongno-gu, Seoul, Republic of Korea |
'본 전시는 옛 도시 한양과 현 서울사이를 지나는 공간 위에 소실된 기억을 복원합니다.'
'The present exhibition restores lost memories onto spaces crossing the old city Hanyang and the current Seoul'
기획의도: 도성 주변의 유산들은 수 세기에 걸친 시공간 속에서 우리의 일상과 함께 공유했다. 즉 (문화재) 공간 위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레이어는 옛 도시 한양과 현 서울 사이에 존재했던 각 시간 층 속에서 재구성된 모습을 통해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고, 조선 시대 한양의 모습과 초현대 화 된 서울 사이사이의 모습 속에서의 이질적 괴리감을 입체적 표현 작업을 통해 좁히고자 한다. 한편, 외세의 방어를 위해 세워진 한양도성의 역사 속에는 포지티브와 네거티브라는 적대의 역사가 공존한다. 그만큼 숱한 세월 동안 다양한 이면의 역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구조적 형태를 띠며 각각의 역사적 공간 위에 지금까지 숨 쉬고 있다. 본 전시는 그 공간 위에 소실되거나 복원된 현장의 현 모습뿐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동시에 이야기하고자 한다.
PROGRAMS
*오프라인 전시 OCTOBER 08 ~ OCTOBER 23 2022
혜화동 전시안내센터(1,2층)와 야외마당
*온라인 전시
OCTOBER 08 ~ NOVEMBER 30 2022
Seoulcitywall.org
About the Exhibition: Heritages surrounding the City Wall share our daily life in the space and time of many centuries. This project reconstructs the space of the cultural heritage by giving shape to the accumulated layers of time existing between the past city Hanyang and the current Seoul, and tries to narrow the heterogeneous gap between Hanyang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ultra-modernized Seoul through the work of cubic expression. On the other hand, contrastive positive and negative history coexists in the history of Hanyang doseong (漢陽都城, Hanyang City Wall), which was constructed for defense against foreign invasion. So there is diverse history behind it over its many years. The history breathes even today in its respective historic spaces with various structural shapes. This exhibition attempts to tell their past memories as well as the current shapes of their sites that have been lost or restored.
*오프라인 전시 OCTOBER 08 ~ OCTOBER 23 2022
혜화동 전시안내센터(1,2층)와 야외마당
*온라인 전시
OCTOBER 08 ~ NOVEMBER 30 2022
Seoulcitywall.org
About the Exhibition: Heritages surrounding the City Wall share our daily life in the space and time of many centuries. This project reconstructs the space of the cultural heritage by giving shape to the accumulated layers of time existing between the past city Hanyang and the current Seoul, and tries to narrow the heterogeneous gap between Hanyang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ultra-modernized Seoul through the work of cubic expression. On the other hand, contrastive positive and negative history coexists in the history of Hanyang doseong (漢陽都城, Hanyang City Wall), which was constructed for defense against foreign invasion. So there is diverse history behind it over its many years. The history breathes even today in its respective historic spaces with various structural shapes. This exhibition attempts to tell their past memories as well as the current shapes of their sites that have been lost or restored.
SECTIONS
PUBLIC ART INSTALLATION
01. Open Section1 (입체/평면전시)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1~2층
09:30 - 17: 30
02. Open Section2
(조형물전시)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야외마당
09:30 - 17: 30
---------------------------------
Online Art Exhibition
ALWAYS
WWW.Seoulcitywall.org
Contact: alpstoto@naver.com
PUBLIC ART INSTALLATION
01. Open Section1 (입체/평면전시)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1~2층
09:30 - 17: 30
02. Open Section2
(조형물전시)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야외마당
09:30 - 1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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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Art Exhibition
ALWAYS
WWW.Seoulcitywall.org
Contact: alpstoto@naver.com
‘세상을 향해 염원하는 곳’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선바위 (禪岩)
작품명: 소생하는 공간의 틈: '염원의 속삭임'
참여작가: 김재익, 김지호
작업설명: 기도하는 염원의 공간 선바위의 모습을 상징화하여 표현한다.
수량/면적: 바위 1基, 토지 52.9㎡
불력(佛力)을 지닌 존재처럼 신성시하던 공간으로 마치 중이 장삼-검은 베로 만들어진 품과 소매가 넓은 중의 웃옷-을 입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불교의 ‘선(禪)’자를 따왔다. 한양도성 자락인 인왕산에 위치하고 있다.
불력(佛力)을 지닌 존재처럼 신성시하던 공간으로 마치 중이 장삼-검은 베로 만들어진 품과 소매가 넓은 중의 웃옷-을 입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불교의 ‘선(禪)’자를 따왔다. 한양도성 자락인 인왕산에 위치하고 있다.
시대성: 조선시대 태조
문화역사기념물 지정: 1973.01.17, 종로구
촬영/답사일: 22년 6월 4일
주소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6
조형 포커스: 자연석 형태의 기하학적 모형과 명암대비가 뚜렷한 모습
2022, 소생하는 공간의 틈: '염원의 속삭임' , 레진, 44*19*25cm
문화역사기념물 지정: 1973.01.17, 종로구
촬영/답사일: 22년 6월 4일
주소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6
조형 포커스: 자연석 형태의 기하학적 모형과 명암대비가 뚜렷한 모습
2022, 소생하는 공간의 틈: '염원의 속삭임' , 레진, 44*19*25cm
‘겸제 정선 그림에 배경이 된 곳’
인왕산 수성동 계곡 (仁王山 水聲洞 溪谷) 기린교
작품명: 경승의 기억
참여작가: 김재익, 김지호
작업설명: 개발로 사라졌다 복원된 기린교의 모습을 통해 겸재 정선의 옛 그림과 지금의 현 모습을 함께 드러낸다.
인왕산 수성동 계곡 (仁王山 水聲洞 溪谷) 기린교
작품명: 경승의 기억
참여작가: 김재익, 김지호
작업설명: 개발로 사라졌다 복원된 기린교의 모습을 통해 겸재 정선의 옛 그림과 지금의 현 모습을 함께 드러낸다.
수량/면적:
돌다리 1基, 수성동 계곡부 및 토지 10,097.2㎡
기린교: 다리길이: 3.7m, 너비와 두께 약 35cm, 장대석 2개를 붙여 총 너비가 약 70cm
1970년대 옥인아파트 개발로 인하여 감추어지다 2012년 복원된 수성동 기린교는 겸재 정선의 <수성동> 회화에 등장할 정도로 전통적 견승지였고, 조선 후기 중인층을 중심으로 한 위항문학(委巷文學)의 주 무대. 기린교는 특히 통돌로 만든 제일 긴 다리라는 점에서 교량사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
기린교: 다리길이: 3.7m, 너비와 두께 약 35cm, 장대석 2개를 붙여 총 너비가 약 70cm
1970년대 옥인아파트 개발로 인하여 감추어지다 2012년 복원된 수성동 기린교는 겸재 정선의 <수성동> 회화에 등장할 정도로 전통적 견승지였고, 조선 후기 중인층을 중심으로 한 위항문학(委巷文學)의 주 무대. 기린교는 특히 통돌로 만든 제일 긴 다리라는 점에서 교량사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
‘조선의 경계 태세를 실시간으로 알렸던 그 곳’
남산봉수대: 목멱산봉수대터 (木覓山 烽燧臺 터)
작품명: 경계를 넘어 하늘을 바라보다.
참여작가: 김재익, 김지호
작업설명: 봉수대에 뿜어나오는 자욱한 연기를 통해 당시 경계를 알렸던 상황의 모습을 묘사한다.
남산봉수대: 목멱산봉수대터 (木覓山 烽燧臺 터)
작품명: 경계를 넘어 하늘을 바라보다.
참여작가: 김재익, 김지호
작업설명: 봉수대에 뿜어나오는 자욱한 연기를 통해 당시 경계를 알렸던 상황의 모습을 묘사한다.
수량/면적: 토지 106.4㎡
봉수대 형태: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향하여 5개소가 있었지만 터만 남아있고, 청구도』등의 관련 자료를 종합하여 1개소를 복원
사이즈: 지름 2.4m, 둘레 9m이다. 그 중앙에 높이 1.5m, 너비 1.5m, 지름 30~40㎝의 화로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통신수단으로 남산봉수대는 남산의 옛 이름을 따서 목멱산 봉수대라 하기도 하고, 서울에 있다 하여 경봉수대라 부르기도 하였다.
봉수대 형태: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향하여 5개소가 있었지만 터만 남아있고, 청구도』등의 관련 자료를 종합하여 1개소를 복원
사이즈: 지름 2.4m, 둘레 9m이다. 그 중앙에 높이 1.5m, 너비 1.5m, 지름 30~40㎝의 화로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통신수단으로 남산봉수대는 남산의 옛 이름을 따서 목멱산 봉수대라 하기도 하고, 서울에 있다 하여 경봉수대라 부르기도 하였다.
‘하늘을 향해 기도 올린 곳’
환구단 (圜丘壇) / 석고단 (石鼓壇)
작품명: 잃어버린 것들을 위한 기도
참여작가: 김재익, 김지호
작업설명: 제사를 올리는 곳이었지만 역사적 현실 앞에 감추어진 뒷모습을 간접적으로 나타낸다.
환구단 (圜丘壇) / 석고단 (石鼓壇)
작품명: 잃어버린 것들을 위한 기도
참여작가: 김재익, 김지호
작업설명: 제사를 올리는 곳이었지만 역사적 현실 앞에 감추어진 뒷모습을 간접적으로 나타낸다.
수량/면적: 4,278㎡ (환구단 터)
터에 남아있는 황궁우와 석고 3개
: 1899년에 만들어진 3층의 8각 건물이며, 석고는 악기를 상징하는 듯한 모습으로 화려한 용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고려 성종 2년(983) 처음 시행, 세조 2년 일시적 제도화, 고종34년에 복원되었지만, 다시 1913년 일제에 의해 헐리고 그 터에는 지금의 조선호텔이 들어서 있다.
터에 남아있는 황궁우와 석고 3개
: 1899년에 만들어진 3층의 8각 건물이며, 석고는 악기를 상징하는 듯한 모습으로 화려한 용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고려 성종 2년(983) 처음 시행, 세조 2년 일시적 제도화, 고종34년에 복원되었지만, 다시 1913년 일제에 의해 헐리고 그 터에는 지금의 조선호텔이 들어서 있다.
‘걸을수록 잊혀진 기억이 소생하는 곳’
한양도성 '순성길' / 서울 한양도성 (서울 漢陽都城)
작품명: 기억할 만한 지나침
참여작가: 김재익, 김지호
작업설명: 500여 년 동안 숱한 세월을 함께 하며 우리들의 삶이 묻어나 있는 ‘길’의 모습이다.
한양도성 '순성길' / 서울 한양도성 (서울 漢陽都城)
작품명: 기억할 만한 지나침
참여작가: 김재익, 김지호
작업설명: 500여 년 동안 숱한 세월을 함께 하며 우리들의 삶이 묻어나 있는 ‘길’의 모습이다.
수량/면적:
639,920.58㎡
(도성길이) / 문화재구역 : 22필지 1,311.15m2 문화재보호구역 : 95필지 40,563.47m2
한양도성: 태조 5년(1396), 백악(북악산) · 낙타(낙산) · 목멱(남산) ·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역사적기억: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숙정문 · 흥인지문 · 숭례문 · 돈의문이며 4소문은 서북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창의문 · 혜화문 · 광희문 · 소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한양도성: 태조 5년(1396), 백악(북악산) · 낙타(낙산) · 목멱(남산) ·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역사적기억: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숙정문 · 흥인지문 · 숭례문 · 돈의문이며 4소문은 서북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창의문 · 혜화문 · 광희문 · 소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도성의 생명줄기’
도성 밖 물길을 잇기 위한 홍지문 남쪽에 탕춘대성 ‘오간대수문’과 청계천 오간수문 그리고 동대문 ‘이간수교’
서울도성과 북한산성을 보완하기 위해 세워진 석성 '홍지문과 탕춘대성'과 함께 세워진 오간대 수문 = 한북문
작품명: 순환하는 세계
참여작가: 김재익, 김지호
작업설명: 소실과 복원, 발굴을 통해 다시 살아난 옛 수문의 모습을 통해 순환하는 도성의 삶을 감상하길 바란다. 본 3개의 수문을 하나의 형태로 통합, 표현한다.
도성 밖 물길을 잇기 위한 홍지문 남쪽에 탕춘대성 ‘오간대수문’과 청계천 오간수문 그리고 동대문 ‘이간수교’
서울도성과 북한산성을 보완하기 위해 세워진 석성 '홍지문과 탕춘대성'과 함께 세워진 오간대 수문 = 한북문
작품명: 순환하는 세계
참여작가: 김재익, 김지호
작업설명: 소실과 복원, 발굴을 통해 다시 살아난 옛 수문의 모습을 통해 순환하는 도성의 삶을 감상하길 바란다. 본 3개의 수문을 하나의 형태로 통합, 표현한다.
홍인지문 오간대수문: 길이 26.72m, 너비 6.8m, 높이 5,23m, 수구 폭 3,76m, 수구 높이 2,78m의 5간 횽예교로 구성
청계천 오간수문: 이간수문(二間水門)라고도 하는 이것은 남산 남소문동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성밖으로 빠져나가도록 하기 위하여 만든 수문 이었다. 오간 또는 이간이라고 하는 것은 수문의 수를 말하는 것이다.
동대문 이간수문: 서울 한양도성에 연결돼 있는 문으로 글자 그대로 두 칸으로 만들어진 수문. 흥인지문과 광희문 사이, 도성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한다.
청계천 오간수문: 이간수문(二間水門)라고도 하는 이것은 남산 남소문동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성밖으로 빠져나가도록 하기 위하여 만든 수문 이었다. 오간 또는 이간이라고 하는 것은 수문의 수를 말하는 것이다.
동대문 이간수문: 서울 한양도성에 연결돼 있는 문으로 글자 그대로 두 칸으로 만들어진 수문. 흥인지문과 광희문 사이, 도성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한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경복궁 생활공간’
경복궁 아미산 굴뚝 (景福宮 峨嵋山 굴뚝)
작품명: 연기가 꽃 피는 곳
참여작가: 김재익, 김지호
작업설명: 옛 생활공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아미산 굴뚝!
경복궁 아미산 굴뚝 (景福宮 峨嵋山 굴뚝)
작품명: 연기가 꽃 피는 곳
참여작가: 김재익, 김지호
작업설명: 옛 생활공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아미산 굴뚝!
구성: 총 4기로, 모두 육각형의 평면을 가지고 있고, 각 면에 하부소상 (해태,노루,박쥐 조각), 중앙 (십장 생, 사군자), 상부소상 (나티, 봉황 등 장수를 뜻하는 '학' 조각). 상부에 당초문 조각이 있다. 기와를 올린 지붕에다 연기가 나올 수 있도록 연가 4개를 배치했다.
아미산 굴뚝의 역사성:
왕비(王妃)의 생활공간인 교태전(交泰殿) 온돌방 밑을 통과하여 연기가 나가는 굴뚝
형태 이야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새로 만든 것으로 십장생, 사군자와 장수, 부귀를 상징하는 무늬, 화마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들이 표현되어 있다. 굴뚝의 위쪽 부분은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하였고 그 위로 연기가 빠지는 작은 창을 설치하였다. 각 무늬는 벽돌을 구워 배열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하였다. 굴뚝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 각종 문양 형태와 그 구성이 매우 아름다워 궁궐 후원 장식 조형물로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아미산 굴뚝의 역사성:
왕비(王妃)의 생활공간인 교태전(交泰殿) 온돌방 밑을 통과하여 연기가 나가는 굴뚝
형태 이야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새로 만든 것으로 십장생, 사군자와 장수, 부귀를 상징하는 무늬, 화마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들이 표현되어 있다. 굴뚝의 위쪽 부분은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하였고 그 위로 연기가 빠지는 작은 창을 설치하였다. 각 무늬는 벽돌을 구워 배열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하였다. 굴뚝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 각종 문양 형태와 그 구성이 매우 아름다워 궁궐 후원 장식 조형물로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조선의 삶과 역사가 함께 하는 곳’
한양도성 성벽 '각자성석'
작품명: 성석의 기개
참여작가: 김재익, 김지호
작업설명: 옛 조선의 삶과 역사가 스며있던 곳, 그리고 아픈 역사가 공존하는 시대의 흔적.
한양도성 성벽 '각자성석'
작품명: 성석의 기개
참여작가: 김재익, 김지호
작업설명: 옛 조선의 삶과 역사가 스며있던 곳, 그리고 아픈 역사가 공존하는 시대의 흔적.
구성: 각자성석은 한양도성 축성의 역사가 담긴 흔적으로 한양도성의 구간별 축성 시기뿐만 아니라 도성 관리의 철저함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각자성석에는 공사를 담당한 구간의 시점이 천자문의 글자로 새겨져 있다. 바로 축성구간을 표시한 것(14C)과 축성을 담당한 지방의 이름을 새긴 것(15C), 축성 책임 관리와 석수의 이름을 새긴 것(18C)으로 나눌 수 있다.
한편, 한양도성유적전시관: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1가 100-267에는 2013년~2014년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성벽 유적을 전시하고 있다. 한양도성 유적(1396)-조선신궁 배전 터(1925)-남산 분수대(1969) 등을 포괄하는 전시관 권역에서는 조선시대 축성의 역사, 일제강점기의 수난, 해방 이후의 도시화, 최근의 발굴 및 정비 과정을 모두 볼 수 있다. 이 곳 주변에는 우리 민족의 쓰라린 아픔도 함께하고 있기도 하다. 콘크리트로 만든 옛 조선신궁의 배전(拜殿) 터인데, 일본의 신사로 사람들이 참배하도록 자리를 만든 '배전' 도 있었다. 이 곳 주변 1930년대 일제가 만든 방공호와 배전 사이에 옛 조선신궁의 신전있었을 것으로 추즉한다.
각자성석에는 공사를 담당한 구간의 시점이 천자문의 글자로 새겨져 있다. 바로 축성구간을 표시한 것(14C)과 축성을 담당한 지방의 이름을 새긴 것(15C), 축성 책임 관리와 석수의 이름을 새긴 것(18C)으로 나눌 수 있다.
한편, 한양도성유적전시관: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1가 100-267에는 2013년~2014년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성벽 유적을 전시하고 있다. 한양도성 유적(1396)-조선신궁 배전 터(1925)-남산 분수대(1969) 등을 포괄하는 전시관 권역에서는 조선시대 축성의 역사, 일제강점기의 수난, 해방 이후의 도시화, 최근의 발굴 및 정비 과정을 모두 볼 수 있다. 이 곳 주변에는 우리 민족의 쓰라린 아픔도 함께하고 있기도 하다. 콘크리트로 만든 옛 조선신궁의 배전(拜殿) 터인데, 일본의 신사로 사람들이 참배하도록 자리를 만든 '배전' 도 있었다. 이 곳 주변 1930년대 일제가 만든 방공호와 배전 사이에 옛 조선신궁의 신전있었을 것으로 추즉한다.
‘조선시대 별자리 관측소_별 하늘 바라보 꿈을 꾸었던 곳’
관천대
작품명: 하늘 관측소
참여작가: 김재익, 김지호
작업설명: 머나먼 우주의 별에 관한 관심은 기술이 발달한 지금이나 몇백 년 전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밤하늘의 별을 관측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이곳에서의 추억을 돌아본다. (현 소실된 구조물 일부의 모습을 조형 작업을 통해 복원하였다)
관천대
작품명: 하늘 관측소
참여작가: 김재익, 김지호
작업설명: 머나먼 우주의 별에 관한 관심은 기술이 발달한 지금이나 몇백 년 전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밤하늘의 별을 관측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이곳에서의 추억을 돌아본다. (현 소실된 구조물 일부의 모습을 조형 작업을 통해 복원하였다)
별 하늘 관측소 첨성대 => 관상감 관천대와 창경궁 관천대로 조선시대에 만든 2개가 있다.
창경궁 관천대 (昌慶宮 觀天臺): 조선 숙종 14년(1688), 높이 3m, 가로 2.9m, 세로 2.3m
서울 관상감 관천대 (서울 觀象監 觀天臺): 세종 16년(1434), 높이 4.2m, 가로 2.8m, 세로 2.5m 크기
경주에 있는 신라의 첨성대, 개성 만월대의 고려 첨성대, 서울 창경궁 내의 관천대와 더불어 우리나라 천문 관측역사의 발전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 문화재청 자료
창경궁 관천대 (昌慶宮 觀天臺): 조선 숙종 14년(1688), 높이 3m, 가로 2.9m, 세로 2.3m
서울 관상감 관천대 (서울 觀象監 觀天臺): 세종 16년(1434), 높이 4.2m, 가로 2.8m, 세로 2.5m 크기
경주에 있는 신라의 첨성대, 개성 만월대의 고려 첨성대, 서울 창경궁 내의 관천대와 더불어 우리나라 천문 관측역사의 발전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 문화재청 자료
시대성: 조선 초, 중기
보물 지정 , 문화재청
촬영/답사일: 22년 6월 4일
주소지: 서울 관상감 관천대: 서울 종로구 원서동 206번지
창경궁 관천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조형 포커스: 지금은 사라진 대 위로 올라가는 돌계단 강조
2022, 하늘 관측소 , 레진, 15*26*19cm
보물 지정 , 문화재청
촬영/답사일: 22년 6월 4일
주소지: 서울 관상감 관천대: 서울 종로구 원서동 206번지
창경궁 관천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조형 포커스: 지금은 사라진 대 위로 올라가는 돌계단 강조
2022, 하늘 관측소 , 레진, 15*26*19cm
‘기억의 입,출구’
한양도성의 체성과 여장
작품명: 모든 것들의 이면 - 빛으로 흘러내린 여장
참여작가: 김재익
작업설명: 체성과 여장 사이로 흘러내리는 빛은 지금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문화재 구조물이였고 근현대 이전의 조선 역사에서는 '은폐' 와 '노출' 그리고 '공격' 과 '방어'를 위해 사용하던 삶과 죽음의 경계 공간이었다.
한양도성의 체성과 여장
작품명: 모든 것들의 이면 - 빛으로 흘러내린 여장
참여작가: 김재익
작업설명: 체성과 여장 사이로 흘러내리는 빛은 지금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문화재 구조물이였고 근현대 이전의 조선 역사에서는 '은폐' 와 '노출' 그리고 '공격' 과 '방어'를 위해 사용하던 삶과 죽음의 경계 공간이었다.
500여 년의 숱한 세월동안 꿋꿋이 서있는 한양도성, 그리고 이것을 구성하는 체성과 여장의 생성과정 이해를 통해 관광, 문화재로 남아있는 현 모습과 과거 경계를 위해 쌓아온 과거의 모습사이에 기억의 격차를 시각화한다.
체성: 성곽을 높게 만들어 몸통사이즈를 키움으로서 안과 밖의 경계를 강화하는 용도
여장: 인명을 보호하기 위한 구조물로서, 공격으로부터의 안전을 위해 설치되었다. 세부 구조물의 유격 사이를 이루는 1타 3구조를 통해 방어뿐 아니라 공격을 위한 노출 공간이다.
공간의 각도에 따라 근총안과 원총안으로 나누어지고 적의 접근에 따라 원거리와 근거리를 나눈다. 이것에 따라 각도의 깊이가 다르다. (원총안은 각도가 완만하며 수평에 가깝고, 근총안은 각도가 가파르다)
옥개석: 상단의 지붕은 옥개석으로 지붕돌로 불린다. 눈썹돌이라고 하는데, 성곽을 보호하는 기능으로 빗물의 침투를 방지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전쟁 중 비상사태시 이 옥개석을 부숴서 성벽 아래로 적을 압사하는 용도로도 사용하였다.
기억: '은폐' 와 '노출' 그리고 '공격' 과 '방어'를 위해 사용하던 이들은 당시 실제 적이 침투했다면 그곳의 광경은 죽고, 사는 문제였으므로 지금의 아름다운 풍경의 느낌과는 상이했을 것이다.
체성: 성곽을 높게 만들어 몸통사이즈를 키움으로서 안과 밖의 경계를 강화하는 용도
여장: 인명을 보호하기 위한 구조물로서, 공격으로부터의 안전을 위해 설치되었다. 세부 구조물의 유격 사이를 이루는 1타 3구조를 통해 방어뿐 아니라 공격을 위한 노출 공간이다.
공간의 각도에 따라 근총안과 원총안으로 나누어지고 적의 접근에 따라 원거리와 근거리를 나눈다. 이것에 따라 각도의 깊이가 다르다. (원총안은 각도가 완만하며 수평에 가깝고, 근총안은 각도가 가파르다)
옥개석: 상단의 지붕은 옥개석으로 지붕돌로 불린다. 눈썹돌이라고 하는데, 성곽을 보호하는 기능으로 빗물의 침투를 방지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전쟁 중 비상사태시 이 옥개석을 부숴서 성벽 아래로 적을 압사하는 용도로도 사용하였다.
기억: '은폐' 와 '노출' 그리고 '공격' 과 '방어'를 위해 사용하던 이들은 당시 실제 적이 침투했다면 그곳의 광경은 죽고, 사는 문제였으므로 지금의 아름다운 풍경의 느낌과는 상이했을 것이다.
한양도성
태조 3년(1395)~현재
조형 포커스: 체성과 여장으로 이루어진 여러 개의 틈 사이로 보이는 빛 그림자를 통해 5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도성의 이면을 나타냄
2022, 갈바륨합금Galvalume에 염색 아크릴, 40*40*100cm
태조 3년(1395)~현재
조형 포커스: 체성과 여장으로 이루어진 여러 개의 틈 사이로 보이는 빛 그림자를 통해 5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도성의 이면을 나타냄
2022, 갈바륨합금Galvalume에 염색 아크릴, 40*40*100cm
세부소개
현 약 3000여 세대가 거주하는 무악동은 서쪽으로 안산, 북쪽으로 인왕산, 동쪽으로는 경복궁 방향으로 주거지가 밀집하고 있고 남쪽 방향에는 서대문을 향해 주거지가 밀집하고 있다.
이곳들의 중심에는 선바위가 있는데 시도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조선 개국시 시 상징과도 같았던 선바위는 장삼을 입고 참선하는 스님의 모습과 같다고 전해진다. 당시에 이 선바위를 중심으로 도성을 안으로 축조하는가, 바깥으로 선바위를 놓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들이 존재하는데, 현재는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다. 종교와 신화에 얽혀있는 이 곳은 지금도 굿터와 절터로서 500년 넘게 흔적을 자리하고 있다.
이곳들의 중심에는 선바위가 있는데 시도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조선 개국시 시 상징과도 같았던 선바위는 장삼을 입고 참선하는 스님의 모습과 같다고 전해진다. 당시에 이 선바위를 중심으로 도성을 안으로 축조하는가, 바깥으로 선바위를 놓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들이 존재하는데, 현재는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다. 종교와 신화에 얽혀있는 이 곳은 지금도 굿터와 절터로서 500년 넘게 흔적을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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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종로구 옥인동 185의4 옥인시범아파트 옆 계곡에 조선시대 안평대군 옛 집터에 있던 기린교(麒麟橋)로 추정되는 돌다리(석교ㆍ石橋)가 발견되었다고 대대적으로 뉴스 보도가 되었다.

철거 후 흔적
옥인아파트 9동 옆 계곡에 있는 돌다리는 겸재 정선이 그린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ㆍ간송미술관 소장)’ 중 ‘수성동(水聲洞)’을 그린 그림에 등장하는 돌다리로 1971년 옥인아파트 준공 당시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제보에 의해 발굴되어 보존되고 있다. 돌다리는 가로ㆍ세로 35㎝, 길이 3.7m 정도인 장대석 두 개를 붙여 만든 것으로 폭은 70cm이다.

철거 후 흔적
옥인아파트 9동 옆 계곡에 있는 돌다리는 겸재 정선이 그린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ㆍ간송미술관 소장)’ 중 ‘수성동(水聲洞)’을 그린 그림에 등장하는 돌다리로 1971년 옥인아파트 준공 당시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제보에 의해 발굴되어 보존되고 있다. 돌다리는 가로ㆍ세로 35㎝, 길이 3.7m 정도인 장대석 두 개를 붙여 만든 것으로 폭은 70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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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천(上天)의 덕은 무성(無聲)이며
생물이 그로인해 살아갑니다.
나라의 근본은 식량에 있으며
사람이 그로인해 살아갑니다.
봄을 맞아 수확을 기대하며 제사 드립니다.
상제(帝)의 은혜가 아니면 민(民)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고려왕조 시절 원구단에 사용한 상제의 축문. 이규보가 썼다.
동국이상국집 전집 40권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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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이 그로인해 살아갑니다.
나라의 근본은 식량에 있으며
사람이 그로인해 살아갑니다.
봄을 맞아 수확을 기대하며 제사 드립니다.
상제(帝)의 은혜가 아니면 민(民)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고려왕조 시절 원구단에 사용한 상제의 축문. 이규보가 썼다.
동국이상국집 전집 40권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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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소공동 87-1번지
본 작업은 석고단을 기초로 제작한다. 고종 황제 즉위 40년을 기념하여 1902년 설치되었다. 광화문 옆 해치를 조각한 석공의 작품으로 '돌로 만든 북', 즉 '돌북'이며 제천(祭天)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어 몸체에는 화려한 용(龍)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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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500여년 동안 서울의 길에는 숱한 세월의 변화와 마주하고 있다. 돌로 축조한 도성만이 멀정하게 남아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위에 벌어졌던 숱한 역사와 사건/사고와 함께 했던 무구한 시간의 흐름들은 바로 이 길위에 우리들의 삶과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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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대문 이간수문은 일제가 수문 일대에 경성운동장을 세우면 땅속으로 파묻혀있었다. 이후 2008년이 되어서야 동대문운동장(경성운동장)을 철거하고 DDP와 동대문역사공원 조성 중 발굴되었다.

2) 청계천 오간수교는 1961년 12월 청계천 복개공사로 사라졌다가, 2000년대 청계천 복원공사로 재건된다. 하지만 교통문제로 오간수문은 복원하지 못하고 지금처럼 오간수교를 만든다.


3) 홍지문 탕춘대성 오간대수문은 홍제천이 관통한다. 취약한 서북방 방어를 위해 축조되었으나 1921년 을축년 대홍수로 대부분 헐리거나 무너져 일부만 남아있다. 1977년 일부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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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문화재청
서울 종로구 삼청로 37, 경복궁 (세종로)
조선시대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후원에 있는 온돌방 굴뚝으로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왕비의 후원으로 만들어졌고 경의루의 흙을 덧대어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 1917년 화재로 손상을 입었지만 해방이후 몇 차례 보수와 수리를 통해 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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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도성 축조 주변에는 2020년 11월 개장한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이 있는데 이 곳 주변에는 우리 민족의 쓰라린 아픔도 함께하고 있다.
콘크리트로 만든 옛 조선신궁의 배전(拜殿) 터인데, 일본의 신사로 사람들이 참배하도록 자리를 만든 '배전' 도 있었다. 이 곳 주변 1930년대 일제가 만든 방공호와 배전 사이에 옛 조선신궁의 신전있었을 것으로 추즉한다.

현재 남아있는 모습 (우측 이미지는 과거의 모습)
콘크리트로 만든 옛 조선신궁의 배전(拜殿) 터인데, 일본의 신사로 사람들이 참배하도록 자리를 만든 '배전' 도 있었다. 이 곳 주변 1930년대 일제가 만든 방공호와 배전 사이에 옛 조선신궁의 신전있었을 것으로 추즉한다.

현재 남아있는 모습 (우측 이미지는 과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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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감관천대는 다듬은 돌로 만들어졌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돌로 난간을 둘렀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원래는 대 위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었다. 관천대는 현대사옥의 건립과 더불어 조사와 정비가 거듭되어 1982년 사적 제296호로 지정되고, 1984년에는 원위치에서 완전 해체 복원되어 지금과 같은 모양으로 남게 되었다.
창경궁 관천대 역시 구조나 크기, 제작방법이 거의 같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고 현재 석대만 남아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창경국 정비사업때 제자리를 찾았다.

서울 관상감 관천대: 서울 종로구 원서동 206번지
창경궁 관천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비록 원형 그대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현 남아있는 석대를 통해 당시 하늘을 관측하여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현상을 인지하고자 했던 열망만은 지금도 남아있다.
천문현상을 관측하기 위해 설치된 이곳은 밤하늘의 별자리 즉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던 곳으로 하늘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관측하였다. 관측기구로서 소간의(小簡儀)를 올려 놓았다고 하여 소간의대(小簡儀臺)라고도 하고, 별을 관측하는 대라는 의미로 첨성대(瞻星臺)라고도 한다.(위키백과)
하지만 세종 때 만들어진 대간의대는 왕립중앙천문대로서 동양 최대 규모와 시설을 자랑했지만, 정치적 이유로 외국 사신에게는 공개하지 않았던 곳이다.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고, 현재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관상감관천대가 유일하다. 창경궁 안에 소간의대 역시 소실되고 석대만 남아있다. 계단과 난간만으로 구성한 건축물로서 간결하고 힘찬 조형미가 존재한다는 학계의 정설이다.
하지만 세종 때 만들어진 대간의대는 왕립중앙천문대로서 동양 최대 규모와 시설을 자랑했지만, 정치적 이유로 외국 사신에게는 공개하지 않았던 곳이다.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고, 현재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관상감관천대가 유일하다. 창경궁 안에 소간의대 역시 소실되고 석대만 남아있다. 계단과 난간만으로 구성한 건축물로서 간결하고 힘찬 조형미가 존재한다는 학계의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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